쾌락 신앙
쾌락(快樂)이라는 말은 사람이 감각기관이나 의식기관을 통해 느끼는 기쁘고 즐거운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이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향이 많지만 사람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느낌이기에 좋은 말이다. 다만 쾌락을 얻는 방법과 그 쾌락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윤리적으로 판단할 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릴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성적 쾌락을 추구하여 도덕적인 경계를 넘어설 경우, 감각적 만족을 위해 약물을 통해 쾌락을 얻으려 할 때, 또는 도박이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통해 정서적 만족을 얻으려는 경향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힌다. 그래서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비난을 받는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 연극이나 영화, 독서나 스포츠를 통해 기쁨을 얻는 쾌락은 건강한 삶을 위해 장려하는 쾌락이다.
요즘 시대의 대세는 ‘쾌락’ 추구다. 쾌락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거북스럽다면, 요즘 사람들은 뭐든 재미 있고 짜릿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관심을 갖는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성향은 문화적 경향만이 아니라 상업적 영향력으로 강력하게 사람들의 가치관을 지배해가고 있다. 그런데 사람의 영혼을 살찌우고 건강하게 하는 쾌락도 있지만, 영혼을 병들게 하고 지극히 감각적 존재로 만들어 미숙한 인간 혹은 동물적 존재로 길들여지도록 하는 쾌락도 있기에 쾌락에 집착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하는 SNS들은 사람들을 단 1-2분 안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매게 한다. 아주 짧은 순간 재미가 없으면 TV 채널을 바꾸고, 클릭을 통해 다른 화면으로 이동하며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여 다른 사이트를 찾아나서는 경향들은 뭐든지 재미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단편적 사고를 강화한다. 이 것이 오늘 더 강화되고 있는 시대적 피상성(皮相性)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첫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항상 기뻐하십시오”(살전 5:16). 바울이 말한 기쁨은 쾌락일까? 넓은 의미에서는 범주에 넣을 수도 있지만 그럴만한 여지는 지극히 적다. 오히려 바울이 말한 기쁨은 초대교회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관련이 있다. 소수자로서 기독교 신앙을 지켜가는 이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과, 신앙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겪게 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혼란이 존재했던 초기 교회에 보낸 이 편지는 믿음을 바르게 지키도록 격려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하는 말은 감각기관을 통해 항상 기쁨을 즐기도록 하십시오 하는 말이 아니다. 수 많은 유혹이 몰려오는 시기에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5:2),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믿음을 지키며 사는 일을 기쁘게 여기라는 권면이다.
오늘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이 바울의 이 같은 의도와는 달리 항상 기뻐하라는 말을 감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슬로건 처럼 여기는 경향은 바울의 본 뜻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고난의 십자가를 지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무색하게 한다. 기독교 신앙이 추구하는 기쁨이란 진리를 듣고 배우며 깨달아 받아들여서 열매를 맺는 기쁨이며, 자기 십자가를 달게 지고 자신을 부정하며 날마다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기쁨이다.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주님의 섭리를 알아차리며 주님과 소통하는 기쁨이다. 박해와 고난을 극복하고 믿음을 지키는 기쁨이다.
바울이 기뻐하라고 한 것은 쾌락을 추구하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요 14:27) 하신 것처럼 바울이 말한 기쁨도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으며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로부터오는 것도 아니며 영혼 깊은 곳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것이며 의식적인 것이다.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감각을 자극하는 쾌락이 아니며, 예배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재미 있는 오락을 통해 얻는 기쁨은 더더욱 아니다. 영적인 기쁨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세속적이고 인간 감각을 자극하여 재미를 만들어주며 레크레이션 단체를 표방하는 교회는 바울이 말하는 기쁨을 오해하는 것이다.
쾌락이 이 시대의 대세가 되고 있다. 교회는 쾌락을 거룩한 기쁨으로 위장하지 말기 바란다. 예수님은 ‘위선자’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신다.
2013년 9월 22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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