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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하늘나라에 들어 갈 사람

하늘나라에 들어 갈 사람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7:21).

 

어떤 이가 위의 본문으로 우스개 소리를 하며, ‘주님, 주님’ 하고 두 번 부르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지만 ‘주님, 주님, 주님’하고 세 번을 부르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삼 세 번’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만세삼창도 한국사람들에게는 익숙하다. 그래선지 주님을 부를 때 꼭 세 번을 외치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아무튼 예수님 말씀을 갖고 장난치는 듯 하여 무례하다는 생각을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핵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God) ‘하늘나라’ (the kingdom of heaven). 당연히 그리스도인들의 관심 역시 ‘하늘나라’ 혹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하늘나라를 천당이라는 죽은 뒤에 가는 장소 개념으로만 이해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 아래,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건들 속에 이해되는 가치개념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가까이 온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해야 한다. 그것은 저 세상의 나라까지도 연결된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저 세상과 이 세상을 나누는 개념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다. 저 세상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저 세상과 동일한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이 미치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나 하늘나라는 죽음 이후의 신비가 아니다. 현재에 개입하는 하나님의 통치, 그 통치를 따라 사는 삶의 자리로 확대하여 이해해야 한다. 하늘나라라고 하든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든 그것은 현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삶의 가치와 죽음 이후에 이르게 되는 장소적 의미 천당과 연결되었있는 것이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천당에 들어갈 사람은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고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주님 주님’ 하고 이름을 부르는 종교행위를 통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신다. 그러면 그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들어갈 수 있다. , 이 정도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는 목적이 ‘천당 가는 것’ 혹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데 아무도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죽은 다음에 갈 거라고 믿지만 지금의 삶이 하나님의 나라를 살지 않는다면 그저 자기 확신일 뿐이다. 지금 현재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도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연약한 존재니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행할 수 있느냐고 말하며, 믿기만 하면 천달에 간다는 종교 교리 뒤로 숨지 마시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은혜’라는 이름을 앞세워 아무 책임과 열매 없이 아주 쉽게 들어 갈 수 있는 곳으로 기대하지 마시라. 말씀의 실천 또는 행함이라는 말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을 신앙의 가장 큰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리고 신앙의 행함으로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천국의 근처에는 얼씬도 못함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귀찮고 힘들고 싫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아는 일과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한다. 아는 일을 위해 열심히 배워야 하며, 행하는 일이 몸에 익숙하도록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을 제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신명기는 신앙교육에 관한 지침서다. 신명기를 읽어가면 매 장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일어난 결과에 대한 이야기와, 불순종하여 일어난 비극에 대하여 알려주는데, 특히 28장은 말씀을 지켜 행하여 받는 복을 약속하는 내용이다. 그 조건 역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도 당신이 가르치신 말씀을 모든 사람들이 지켜 행하도록 교회가 가르치고 훈련하라는 것이었다 (28:20). 야고보는 이 말씀을 받들어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고 단언했다. 예수님이 ‘주여 주여’ 하는 사람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들어간다고 한 말씀도 열매와 관련된 이야기 속에 나온 말씀이다. 주님은 신앙의 열매를 기대하신다. 예수님이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신 것도 역시 열매에 대한 관심이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큰가가 아니라 합당한 열매를 기대하시는 것이다. 합당하다는 말은 알맞다 혹은 적절하다이다. 합당한의 반대 말은 틀리다, 엉뚱하다, 맞지 않다가 된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은 필요하지 않다. 아무리 많아도 맞지 않는 것들은 버린다. 신앙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은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것이라면 버려야 한다. 주님의 뜻이 윤리적 기준이다. 그래야 신앙이라 할 수 있다. 맞지 않는 것을 버리는 일도 진리를 행함이다. 이 역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데 중요한 조건이다 

 

기독교 신앙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고, 그 말씀의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고 그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기준이 있을 수 없다. 말씀을 배우고 이해하여 깨달아 행하여 살아갈 때 그 어디서나 하늘문은 열려 있다. 누가 이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겠는가? 입으로 주여 주여 한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행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이미 하늘의 삶, 영생의 삶이 시작되었다.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모호하지 않고 아주 분명하고 확실한 길이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사는 사람이다.  

 

2013년 9월 27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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