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기도를 가르치는 교회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마 6:5)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다. 유대인들은 기도하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기도의 열심에 문제가 있음을 보시고 바로 잡기 위해 기도를 가르치신 것이다. 그래서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마 6:5)로 시작하신 것이다. 교회는 당연히 기도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기도를 가르치는 일도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해야 한다.
기도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비는 행위나 의식’이라고 정의한다(국립국어원). 특히 자기 한계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력 있는 존재에게 의탁하기 위해 언어를 통해 구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또는 자신의 경험하고 발견한 신앙의 대상을 향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도는 가장 원시적 종교에서부터 존재한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공동체 중 종교행위가 없는 곳이 있을까? 그리고 종교행위가 존재하는 곳에 기도라는 형식이 없는 종교가 있을까? 틀림없이 그런 종교는 없을 것이다. 기도는 인간의 가장 원시적 종교행위에서부터 있어왔다. 따라서 기도는 사람의 원시적 종교의식을 드러내는 원초적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기독교만이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기독교의 기도는 원시적 기도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하고 물어볼 필요가 있다. 기독교는 기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물음을 가져보는 것은 신앙발달에 유익하다. 기도의 형식이 원시적 신앙의 표현이고 인간 안에 내재한 원시적 종교 본능이라 한다면 모든 기도와 동일한가? 아니면 다른가?
다행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미리 주었다. 마태복음 6:5-13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바른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모든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기도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합당하고 바른 기도를 할 수 있다. 이 점이 기독교가 가르치는 기도의 특성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기독교의 기도를 이해하는 기본 지침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암송하고 있는 ‘주기도문’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 가르침 속에 들어 있다.
기도의 위선을 조심하라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치기 시작하며 하신 첫 마디가 기도의 위선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비그리스도인들도 다 알고 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구절이 6:3절에 있다. 기도를 가르치시기 직전 경고하신 내용이다. 위선을 경고하는 말씀을 하신 다음 기도에 대한 말씀으로 주제를 옮겨 갔다는 점과, 기도를 하되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말씀으로 시작하셨다는 점에서 유대인들의 기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판단이 매우 부정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태복음 6:5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이 구절에서 기도를 할 때 범하기 쉬운 두 가지 오해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기도하는 대상에 대한 혼란이고, 다른 하나는 기도에 대한 보상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것이다. 전자는 사람들이 말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관점에서 사람에게 보여주는 공로로 생각하는 잘못이다. 후자는 기도의 보상이 사람의 가치나 세상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도하는 사람은 이미 세상으로부터 다 받았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주님께서 보상해주실 것이 없다는 뜻을 표현하신 것이다. 즉 그런 기도에 대하여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며, 그러한 기도는 가치가 없으며 주님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행위라고 하시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 “내가 기도해서 되었다”고 자랑하는 경우를 본다. 마치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기도에 대한 공로를 강조하는 것인데 예수께서 말씀하신 위선적인 기도의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기도하고 누가 기도에 응답하는가? 이 점은 다 알고 있는 듯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모두 자기를 향한 위선적인 기도가 될 수 있기에 그리스도께서 경고하시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그것이 인간이 지난 한계이며 위험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거룩한 영적 행위다. 사람의 이기적 욕심이나 공로심이 끼어들어서야 어찌 하나님의 보상을 기대하겠는가? 그러니 기도하는 사람은 지금 누구에게 무엇을 목적으로 기도하는 지를 스스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항상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이 이럴 때 필요하다.
2013년 12월 10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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