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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선택받은 자의 엄중한 책임

 

                         그대는 남은 가르치면서도, 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 2:21).

 

   율법도 없고 예언자도 없었던 이방인들도 그들의 행위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게 될 것이라고 역설한 뒤, 바울은 율법을 갖고있으면서, 믿음에 열심을 내면서도, 오히려 무책임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된 유대인들의 엄중한 책임을 역설한다.

 

   로마에 살고 있는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외침이라기 보다는, 유대주의를 주장하는 유대교인들과, 유대인들이면서 기독교인이 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유대주의와 율법주의를 따라가며 이방인들에게까지 그들의 신념을 요구하는 이들에 대한 반론이다. 그러니까 바울이 가장 경계하면서 전투적으로 대항했던 율법주의적 혹은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에 대한 비판적 공격을 시작하는 것이다. 바울의 비판을 세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들의 신앙에 대한 첫째 비판은 선택받은 백성의 특권으로서 믿음의 내용은 풍부하나 실행이 없다는 점이다. 허울만 요란했지 행함을 통한 열매가 없어서 그 많은 율법과 전통적 종교의식이 아무 쓸모없게 되었다는 것이 바울의 생각이다; “그대가 유대 사람이라고 자처한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대는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장 선한 일을 분간할 줄 알며…, 그렇다면 그대는 남은 가르치면서도, 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도, 왜 도둑질을 합니까?” 바울은 유대인들의 위선적 종교 행위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바울의 이같은 거친 언사는예수님과 일치하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육성을 들어보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 23:2-3). 이러한 비판은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이 적용되는 것이다. 좋은 신앙의 고백은 넘쳐나는데, 정작 행위를 통한 열매가 부실하다면 이 비난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표시로서 종교적 의식으로 행하여온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백성답게 거듭나는 존재로 살아가는 윤리적 삶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할례가 마치 하나님님 백성으로서의 선택받은 유일한 인증인 것처럼 믿고, 그 인증이 없으면 하나님과 무관한 것처럼 설파하는 유대인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도 많아져 바울이 분노하게 되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도 할례보다 다시 태어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 6:15). 이러한 바울의 믿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합당한 것이다. 예수님은 거듭나 새 사람이 되는 일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보증이  된다고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 3:5). 변화받은 새 사람 됨이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는 증거가 된다. 

 

사진/ 엘파소 광야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도 율법의 뜻(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할례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인정될 것이고, 반대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외우고 있어도 행하지 않으면 그 할례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2:25-26). 이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믿음의 행함이라는 말을 통해 할례라는 특권의식을 무력화 하였다. 오늘날 언어로 말하자면, 행함이 없는 무늬만 기독교인, 명목상 기독교인은 아무리 스스로 믿음의 사람이라 해도 아무 효과가 없는 부도수표와 같다는 것이다. 오직 변화된 새로운 피조물로서(고후 5:17) 살아가는 것이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 됨을 증거한다.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도 선택받은 유대인 이상 경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한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이렇게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8:10). 그래서 바울은 더 적극적으로 이방인이 아무 차별 없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고 선언한다 ( 3:29). 더나아가 무할례자인 이방인을 통해 유대인들의 위선적 신앙이 폭로되고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본래 할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이, 율법의 조문을 가지고 있고 할례를 받았으면서도 율법을 범하는 사람인 그대를 정죄할 것입니다” (2:27).

  

   이제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차이도 없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유대인들이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믿어왔던 율법과 할례, 이 것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특권이요 유일한 구원의 상징인 것처럼 믿어왔던 그 믿음이 행함이 없을 때 아무 쓸모없는 허세가 되고 말 것임을 선언하였다. 이제 바울은 오직 믿음의 행함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만이 선택받은 증거가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갗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 사람으로 유대 사람인 이가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을 따라서 받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 (2:28-29).

 

   이 또한 예수님의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하셨다 ( 7:21). 아무리 종교적 능력을 행하여 예언도 하고 귀신도 쫒아내고 기적을 행하였다 하여도, 행함이 없는 것이라면 아무 쓸모 없는 짓임을 분명히 하셨다. 야고보도 이 사실을 잘 이해하였기에 말씀을 행하여 나타나는 열매 없는 신앙은 모두 죽은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 2:26). 바울의 뜻도 명백하다.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신앙의 유산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먼지 풀풀 나는 골동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골동품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깨달아 받아들여서 행하여 열매를 맺는다면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이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바울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1:15) 충실한 종이 분명하다.

 

2015년 5월  28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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