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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하나님의 나라는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나는 R-1 비자를 들고 미국에 들어와 영주권자를 거쳐 이민 8년을 지나 시민권을 받았다.  이와같은 절차는 법적으로 정해진 최단기간 안에 순조롭고 매끄럽게 진행된 결과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과정에서 피눈물나는 사연을 안고 사는지 우리는 다 헤아리지 못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미국 시민권자라고 공개적으로 선서하고 살지만, 그러나 나는 존재적으로 여전히 한국 사람이다. 어디를 가도 내 생김새를 보고 미국사람이냐고 묻지 않는다. 다만 미국 시민권을 가졌느냐고 물을 뿐이다. 미국 시민권을 가졌다 하여 내가 미국사람인 것은 아니다. 비록 한국의 편견 때문에 한국국적을 원하지 않게 상실했지만, 평생 한국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나의 존재적 신분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이중국적자에 대한 편견이 매우 심하다. 마치 스파이처럼 의심하거나 배신자처럼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 단일민족 국가라는 자부심(?)을 어릴적부터 주입받아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단일민족국가를 이념처럼 숭상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일은 아닌 것 같다. 국가가 민족만을 단위로 하는 개념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이중국적자를 마치 기회주의적 회색분자 쯤으로 치부하는 시각은 불편하다. 이민자는  이중국적자로 살아야 하는 신분인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도 철저하게 이중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순수한 그리스도인일수록 더욱 철저하게 이중국적의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고 세례를 받아 교회의 공식 회원이 되고, 성령의 세례를 받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나라 시민이 된다는 원리가 그렇다.

 

예수께서 이 땅으로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는 윤리적 가치와 규범에서 세상의 나라와 전혀 다른, 그러나 이 지상에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나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나라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사진/ El Paso Korean UMC, El Paso, Texas 

 

예수께서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 1:15) 하는 말씀을 따라 회개하고 주께 돌아온 백성들로 만들어진 나라다. 이 나라에는 세상의 어둠에 지친 사람들, 세상의 악마에 시달리며 고통받던 사람들, 세상의 권력과 자본의 억압에 눌려 있던 사람들, 끝없는 죄의 유혹으로 영혼이 갈기 갈기 찢어졌던 사람들이 피난을 오거나, 회복하려 오거나, 또는 새 세상을 염원하고 희망하며 오거나, 아니면 저 넘어의 초월적 세상 하늘나라로 가려고 오거나, 가끔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떵떵거리며 살려고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이용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이유로 이민을 왔던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따라 거듭나 하나님의 나라 시민이 되어 사는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가져오시고 이 땅에 세워가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처럼 영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각 사람들이 지닌 영혼의 영토에 세워지고, 그 나라는 그 영혼의 연결망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리적 경계를 넘어 소통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나라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민들의 행위로 드러나는 나라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부분적으로 실현하여 세상 속에 드러내는 하나님 나라의 실천이다.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 일정한 국가체제를 갖추고 세상의 독립국가와 같은 형식을 취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라를 세속적으로 상징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존재하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두 나라에 속하여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이민을 와 이중국적으로 사는 일이 쉽지 않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모국의 문화와 새로 정착한 나라 사이의 차이는 내적 스트레스가 된다. 더러는 이도 저도 아닌 정체성으로 이민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의 나라를 함께 사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중국적의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가는 삶이 주는 스트레스가 하도 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에 실패하고 피눈물 흘리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다 모른다.  

 

하나님 나라시민권자를 강조하면서 오직 저 하늘나라시민권인 것으로만 이해하고, 세상의 나라를 완전히 부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라고만 주장하는 것도 신앙의 위선에 빠지는 위험한 생각이다.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세워지는 나라이며 이중국적을 허용하면서, 인종과 언어, 영토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마침내 전 세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소통하고 평화롭게 일치하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고 추구한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전쟁과 인간파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이 어둠과 지의 세상과는 긴장하고 경계하는 관계일 수 밖에 없다. 이 점에서 교회는 이 전쟁터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을 위한 대사관의 책무로 이해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우리는 지금 죄가 가득하고 악마가 몰아가는 세상의 나라에 살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시고 우리가 알아듣도록 가르쳐 세우신 그 나라에 속한 백성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와 예배하며 모든 차이를 넘어 우리 모두가 그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다시 세상으로 파송하여 돌려보낸다. 어느 교회도 단일국적을 요구하며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막지 않는다. 그 어떤 교회도 세상국적자라 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지 말라고 막지 않는다. 누구든지 환영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도록 파송하여 보낸다. 돌아가서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잊지 말고 살며, 이 세상에 그리스도 예수의 평화, 그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심도록 격려한다.

 

나는 몸으로는 이 세상의 사람이지만, 나의 내면, 나의 속사람, 나의 사상과 양심으로는 자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 살아간다. 이 것이 나의 분명하고 자랑스러운 이중적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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