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회복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국가권력이 이미 재벌에 넘어갔다며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국가를 경영해야 할 조직이 돈을 가진 재벌의 힘 앞에 무력해졌다는 뜻이고, 국가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하나의 건강한 공동체로 만들어가야 할 정치가 돈 앞에 아무 힘을 못쓴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대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돈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더이상 돈의 힘을 컨트롤 하기 어려울 만큼 공동체의 균형이 기울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공동체가 비극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 맛에 중독되면 그 파국의 결말을 생각하기 보다는 불나방처럼 불을 향해 돌진 할 뿐이다.
추수감사절이 오기도 전에 라디오 방송이나 상가들마다 하루 종일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온다. 점점 앞당겨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듯 하다. 블랙프라이데이부터 크리스마스 선물 마케팅이 뜨겁다. 우리가 다 알듯히 년말 판매고를 최대한 올리려는 상업적 전략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물질소비에 이끌어들이려는 유혹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성탄절 혹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홀리데이 시즌’ 혹은 ‘크리스마스 연휴’라고 소리 높이며 ‘해피 홀리데이’라고 인사를 한다. 참으로 이율배반적 장사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로 기분 내고 돈 벌며 ‘해피 홀리데이’라니….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예수를 밀어내고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 나누어주는 착한 할아버지로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 되더니, 이제는 크리스마스의 심볼이 아니라 홀리데이 소비 욕망을 부추키는 모델이 되고 말았다. 크리스마스 예배가 이제는 홀리데이 파티로 전락하여 흥청거리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크리스마스’나 ‘성탄절’이 이미 자본주의 세상에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고, 영악한 세속의 유혹에 교회가 무기력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교회는 지금 성탄절의 순수한 의미를 지켜가는 걸까?
엘파소 광야의 이른 아침, El Paso, Texas
12월 25일이 정확하게 성탄일인 것이 맞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해왔고, 그것이 기독교 신앙에 중요한 의미를 만들어왔기에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단순히 생일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구약의 예언서는 메시야의 탄생을 예언하였고,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비통의 세월 속에서 메시야의 탄생을 기다리며 견뎠다. 고통이 깊을수록 그들은 메시야의 탄생을 소망하는 믿음을 의지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나사렛 예수가 메시야 그리스도임을 고백했다. 그리고 지금껏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신앙을 지켜온 것이다. 그러니 성탄은 단순히 예수의 생일이 아닌 것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날을 중심으로 교회력을 만들어 지켜왔다. 성탄일이 되기 4주 전부터 교회력이 시작되는데 4주간의 대강절이다. 교회는 결코 성탄일을 예수의 생일잔치로 준비해오지 않았다. 성탄일은 구원을 향한 열망의 신앙에 하나님이 응답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신뢰가 만드는 믿음의 의미를 드러내는 사건이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교회가 구성한 대강절 4주간의 성경독서 프로그램은 생일축하연을 준비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비장한 구원의 열망을 담고 있다. 인간 세상의 죄된 현실을 인식하고 죄의 철저한 회개를 인도하며 그리스도의 구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이해하도록 짜여있다.
성탄의 오랜 주제 평화 기쁨 희망 등은 인간의 절망적 상황에서 오는 구원의 소식을 담은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해피 버스데이 투 크라이스트’ 하고 노래할 일이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죄된 자신과 이 땅의 현실을 애통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예배다. 고통과 한숨 가득한 세상의 어두운 현실을 두고 하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예배다. 아무리 자신을 들여다 보아도 여전한 인간의 죄성을 두고 구원을 기다리는 예배다. 교회는 결코 크리스마스를 생일축하잔치로 여겨오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지켜온 교회력이 이를 증명해준다.
크리스마스는 부담이다. 경외감이고 두려움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오심이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고 교회는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첫째는 고난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며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는 심판의 일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하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는 것은 곧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일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둘은 모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부담이다.
우리 자신이 과연 심판에서 불쌍히 여김을 받고 구원을 받을 대상에 속한 것인지, 아니며 죄로 어두워진 이 세상에 푹 젖어 살아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마는 존재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크리스마스는 분명 회개하며 통회하는 부담스러운 절기가 될 것이다. 또 예수를 믿고 따라가는 일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에 두려운 일이다.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라는 조건으로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아왔던 자기와 결별할 수 있는 자신이 없다면 이 조건이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지금껏 웃으며 즐겼던 가치들을 십자가에 못박을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기꺼이 못 박을 수 있는 사람에게도 역시 고통스러운 일이다. 세상이 여전히 악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선물 사느라 부담스러운 날이 아니라 십자가를 져야 하는 부담이다. 예수를 따라나설 자신이 있는가?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더 이상 구원이 필요없다고 믿는 이들이여. 이 땅에 고난의 눈물을 외면하고 죄의 뿌리를 감추어두고 꾸며진 웃음으로 생일축하 하는 이들이여! 크리스마스는 오늘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함을 고백하는 예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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