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 인기와 영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 흥!
예수께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통해 오천 명 이상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 일은 현장에서 기적을 체험하고 먹을 것을 제공받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자선가가 사회 공익을 위해 거액을 기부한다는 소식처럼 모든 사람의 이목 (耳目)이 집중되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럴 때 예수님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요한복음은 오병이어 기적 이후 광경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6:15). 요한이 전하는 당시의 분위기는 예수께서 정치적 결단만 내리면 왕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사람들에게 인기절정이었다. 이 대목은 요한복음만이 갖는 독특함이다. 다른 공관복음서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전한 다음 곧 사람들을 피하여 예수님은 산으로 가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요한만이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나타난 사람들의 인기가 위험한 일로 판단했음을 전한다.
누가복음을 보면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오병이어 기적 후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다 함께 있던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신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도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제자들도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해 하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사실 예수님에게도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신의 사역 내용과 목적이 사람들에게 바르게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나 잘못된 믿음은 역시 예수님 사역 역시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반응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 관심은 자신의 인기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당신이 전하신 복음의 진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누가복음의 증언을 들어보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셔서,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시고,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흗날에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눅 25). 스승인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잔뜩 고무되었을 제자들에게 찬 물을 끼얹듯이 경고하신 것이다. 세상의 인기를 따라 임금이 되는 일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세상의 인기를 등에 엎고 세도를 부리는 이들에게 고난당하고 죽임을 당할 메시야임을 분명하게 알리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말씀하셔도 사람들은 세상의 인기를 따라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만.
사람들의 인기가 예수님의 사역에 위험한 것은 단순히 기득권, 권력자들의 질투와 박해 때문은 아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 그리고 장로들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마침내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그렇게 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기에 앞에서처럼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서, 사흗날에 살아나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이 숨어있다. 그것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진리의 영성이 세상의 인기와 함께 가기 어렵기 때문이었으며, 사람들의 인기가 도리어 영성에 방해가 되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사람이 지닌 죄성과 영적 진리에 대한 무지, 그리고 지극히 물질적 감각에 의존된 인간 욕망이 추구하는 눈에 띄는 사람들의 인기는 영적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는 일에서 악마의 폭력적 박해보다 더 심각하게 문제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요 5:41).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는데 사람의 인기를 필요로 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셨다. 사람들이 동의하고 인정해야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이 만들어가는 질서와 가치, 사람들의 욕망과 바램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가치와 함께 하기 어렵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십자가의 길, 자기 부정의 길이 어찌 사람들의 인기를 끌 수 있는 내용인가.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만이 인기를 따라 가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은 많은 이들로부터 인정받고 인기를 얻기 위해 애쓰며 산다. 그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이기심일지라도 창조적 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을 말할 때, 그리스도인의 영적 인격, 영성을 말할 때 대중의 인기를 내세우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어렵사리 회복한 영성을 물질적 가치나 세속적 가치에 팔아넘기는 타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교회의 문화는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할 때,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면 그 것이 참이요 진리가 되어버리는 현상이 지배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볼 때 이러한 교회현상들이 기독교 신앙에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야 한다. 현대인들의 입맛과 취향에 맞추어야 한다는 말이 교회 안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들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인기를 잃는 복음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협박처럼 들릴 수도 있다. 사람들의 인기도 얻고 복음도 전하고 ‘일거양득’(一擧兩得)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다 잡아야 한다고 다그치는 듯 하다. 그럴듯 하기는 해도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성경은 이 세상과 사람의 본성을 죄를 짓는 속성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세상의 유행과 하나님의 나라와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영적 타락의 위험은 항상 그럴듯한 말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예수님의 경고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눅 9:25) 하신 말씀을 이렇게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인기를 다 얻었다 하여도 영적 생명인 진리를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인가? 바울은 이 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우리는 어느 때든지, 아첨하는 말을 한 일이 없고, 구실을 꾸며서 탐욕을 부린 일도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또한, 여러분에게서든 다른 사람에게서든,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한 일이 없습니다”(살전 2:2-6).
사람의 환심을 사고 인기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을 얻을 것인가? 이 두 길은 서로 만나지 않는 다른 길이라는 점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영성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결단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얻게 되는 땅에 묻힌 보화를 발견하는 영적 안목을 가질 때 사람의 환심을 사고 인기를 얻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알게 되며,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가슴 벅찬 일인지를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믿음의 행위는 두 갈래 길에서 한 길을 택하여 걷는 것이다. 넓은 문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을 택할 것인지 말이다. 우리는 사람의 환심을 사고 인기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을 얻을 것인가 하는 두 길 중에서 한 길로만 갈 수 있다. 이 것이 기독교 믿음이다.
2014년 11월 26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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