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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바울을 위한 변명 - 오직 믿음?

오직 믿음?

 

  

   “사람이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 3:28).

 

   바울의 신앙은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심판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사람의 온갖 불경건함과 불의함을 겨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 1:18).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차별 없이 이 종말적 심판 앞에서 선다. 모든 사람이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 3:9-1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은 이 진노의 심판을 피하는 길이다. 이 진노의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종말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 1:5).

 

   바울은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 사이에 있는 차이와 오해를 해명하거나 바로잡으려고 애썼다. 유대교가 지금까지 오직 율법 조항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받아 진노를 피할 수 있다고 믿어온 믿음과, 율법과는 상관 없이 어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믿으면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으며 곧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역설하는 바울의 복음 사이의 다른 점과 그러나 연관된 사실을 설명하고자 했다.

 

   율법 조항을 외우고 지켜 행하는 것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아 그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바울의 분명한 주장이다. 이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위선자들이라고 혹평했던 것처럼, 율법을 지키고 종교의식을 행하며 살지라도 인격이 변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모든 종교적 행위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은 앞서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라 하였고, 오히려 속 사람으로 유대 사람, 즉 인격적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진노를 피할 수 있다고 하였다 ( 2:28-29).

 

 

                                            

 사진/ Korean Methodist Church, El Paso Texas

 

 

   바울이 율법의 행위를 통한 종교적 유대인이 아니라, 속사람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 구원받는 믿음이라고 역설한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믿음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가졌던 율법 중심의 신앙도 대단한 믿음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 그 유대교의 믿음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또다시 율법 중심의 유대교 믿음처럼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의롭게 여기어 진노의 심판을 면제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바울이 목숨을 걸고 전하고자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라오는 이들에게 요구했던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걸고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사역 전체 내용이다. 바울은 그것을 새로운 피조물로 압축하여 설명하였다(고후 5:17). 이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뜻인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죄인인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자신을 부정하는 일과, 예수님께서 보내기로 약속하신 성령을 통해 새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설명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와 같은 성품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5:22-23).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처럼 성령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나, 그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믿음은 새 사람이 되어 사는 것을 뜻한다. 오직 이 것만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구원을 얻는 길이다.

 

   바울은 이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속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설명한다. 무슨 뜻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죄를 결코 용납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속성상 죄인을 거저 용서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 그 믿음의 내용을 의롭게 인정하여 용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도 지켜지고, 죄인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3:26). 이처럼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전적인 호의와, 사람의 죄가 지닌 비극과 그 죽음에서 구원하는 원리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값 없이 받은 은혜라고 바울은 고백한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믿어 성령으로 새 사람이 되고, 그 믿음을 인정하여 하나님께서 죄인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 때 우리는 구원을 경험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사람의 믿음의 행위와 하나님의 은혜가 만나는 이 구원은 결코 사람의 노력이나 하나님의 자비 한 쪽에 의존되어 있지 않다. 사람의 책임적 신앙인 믿음의 행위(율법) 또는 복음의 내용을 따라 거듭나 살아가는 내면적 거듭남과 이를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만나 일어나는 기적이 구원이다. 혹시나 구원에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해서 자신의 주장이 결코 율법적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3:31).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오신 목적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신 말씀과 일치한다( 5:17).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오해하여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이라고 외우며, 마치 행위가 필요없는 관념적 신앙처럼 믿기만 하면 된다는 이해는 십자가 복음을 왜곡하고 바울의 뜻을 오해하는 것이다. 이 오해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 기독교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율법조항만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고 했더니, 예수님의 가르침인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돕고 섬기는 행위를 외면하고, 공동의 선을 이루고 악과 맞서 싸우며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하여 진리를 행하는 일까지도 부정하며, 기독교인의 윤리적 책임을 외면하면서 믿음의 내용도 모른 채 오직 믿기만 하면 된다며 자기 믿음에 빠지는 영적 타락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면 바리새인들보다 더 악한 행위없는 바리새인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바리새인들은 율법적 행위라도 있었지만).

 

   바울은 결코 행위 없는 믿음을 말한 적이 없다. 바울이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고 한 것도 첫째는 율법을 앞세우며 십자가 복음을 외면하는 이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을 요구한 것이고, 둘째는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에게 율법적 행위가 꼭 필요한게 아니라며, 유대교 율법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을 믿는 것으로 구원 받을 수 있음을 역설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행위없는 믿음을 말하지 않았다           

 

2014년 5월 4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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