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만 하면 된다고?
목회를 오래 하신 분들이나 은퇴를 하신 분들께서 갈수록 목회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씀들을 하신다. 어떤 분들은 “내가 지금 다시 목회를 시작한다면 못할 것 같다”는 말씀도 하신다. 겸손으로 하신 말씀들이 분명하다. 목회하는 후배들을 존경하고 격려하는 말씀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사실도 있다.
목회 대상은 사람이다. 목회가 어렵다는 말은 사람들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물론 사회적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 원인도 있다. 농경사회에서 도시사회로 변화된 탓도 있다. 그리고 이민교회는 조국을 떠나 이방 땅에 살아가는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탓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적응해 가는 사람들이기에 결국 사람이 문제의 핵심이다. 목회가 과거에 비하여 많이 어려워졌다는 말은 사람들이 과거에 비하여 너무 많이 달라졌다. 혹은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판단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뜻이 된다.
사람이 많이 달라졌고 한경이 빠르게 변화했으며 사람들의 가치판단이 달라졌으니 목회도 달라져야 한다며 목회세미나를 통해 많은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저런 목회세미나가 도처에서 성황을 이룬다. 목회의 변화를 위한 목회자들의 갈급함 때문이다. 그러나 시원한 대안과 뾰족한 길을 제시하는 세미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은 답답하고 갈급함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으로서는 좋은 자극이 되겠지만 바로 이거다 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이 처한 상황은 백인백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방법으로 사람의 요구에 부응하는 시도들은 본질을 떠날 수 밖에 없고, 목회자도 교인도 교회도 모두 길을 잃고 지치고 말 가능성이 크다.
가장 어려워진 것이 무얼까? 아마도 사람들의 열심이 줄어들고, 헌신도가 떨어지며 모이는 일에 소극적이 되어 교회 공동체가 제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고 느끼는 것이 목회자로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소극적 현상을 나타내는 평신도 입장은 ‘믿기만 하면 되지, 꼭 여기 저기 참석하라고 강요하고, 이리 저리 교회 일 하느라 정신 없이 뛰어다녀야 하나? 일요일 하루 좀 쉬어야지 일주일 내내 일하느라고 지친 사람들에게 교회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태도들이 아닐까 싶다.
목회자와 교인이 갖는 어려움은 서로 다른 성격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서로의 역할과 선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다름이 나쁜 것은 아니다. 서로 다름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보는 문제와 평신도가 서로에게 답이 될 수 있다. 그 점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목회가 힘들다는 것은 다른 한 편으로 교인들도 믿음 생활이 힘들다고 느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사이 큰 간격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로 풀어보려 한다. 우리 기독교는 오랜 동안 ‘믿기만 하면’이라는 가르침을 지켜온 것이 사실이다. 이 말이 교리로서 또는 마치 주문처럼 이해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믿기만 하면’ 모든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된다는 믿음을 강조하고 강조해왔다면 ‘믿기만 하면 되지…’ 하는 불만 앞에 할 말을 잃을 수 있다. 과연 믿기만 하면 되는가? 그리고 그 믿기만 하면 되는 놀라운 믿음이 무엇인지는 알고 하는 말일까? 믿고 신뢰하는 내용을 모르면 믿음 자체도 성립할 수 없다.
기독교에서 믿음이란 교리도 아니고 마법의 주문도 아니다. 기독교의 믿음이란 믿음의 대상인 주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인격적 신뢰이다. 그 인식과 신뢰가 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믿음의 행위이며 분량이고 능력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하는 말 ‘믿기만 하면’이라는 말이 사변적이거나 관념적인 교리나 미신에서 볼 수 있는 마법적 주문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 ‘믿기만 하면’ 하는 태도가 우리의 신앙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교회는 ‘믿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믿기만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성서가 우리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일관된 가르침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예수님으로부터 사정없이 심판을 받아야 했는가? 잘못된 믿음도 문제지만, 믿음대로 행하지 않아 예수님의 분노를 산 것이 아닌가 말이다.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아마 마음 속에 주님을 믿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구원받는다고 믿을 것이다. 교리적 가르침에 따라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면 그것으로 믿음이 완성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믿음을 따라 해야 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진정으로 믿음의 시작이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이 점을 가르치셨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마 7:21).
교회를 사역공동체로 이해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사람을 부르시고 변화시켜 구원에 이르게 하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이기적이며 욕심을 따라 사는 삶에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목적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다. 교회는 천국 가는 여행사가 아니다. 이 땅을 고치고 변화시켜 새 싹을 내어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어가려고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목적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모두 그렇다.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바쳐진 사람들, 하나님께 충성하며 바친 물질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데 사용되는 공동체가 교회다.
믿음의 깊이를 이해하려 한다면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 대신 ‘믿기만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013년 10월 11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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