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 이해하기
‘기독교’라는 말은 이미 전 지구적 언어가 되었다. 어디를 가든 기독교 신앙과 그 문화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며,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담은 성경은 이미 2천 5백에 가까운 언어로 번역되어 지구 곳곳에서 읽혀지고 있다.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고 전파하며 실천하는 교회 역시 온 세상 어디서든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세상의 중요한 자리에서, 또는 고통과 아픔이 있는 자리에서 사람과 사회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 기독교를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믿음을 가진 신자들만의 몫은 아니게 되었다. 신자던 신자가 아니던 이미 세상 한 가운데 큰 자리와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기독교를 이해하는 일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상식이 되었다.
기독교 신자는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의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내용도 모르고 무조건 믿기만 한다고 신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 버스나 올라타고 달리기만 하면 자기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고 믿는 사람을 우리는 결코 믿음이 큰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믿어야 할 내용을 잘 알지 못하면 허공을 치는 믿음, 묻지마 믿음, 또는 원시종교나 미신처럼 되고 말 것이다. 이 점에서 믿음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무엇을 믿는 것인지, 그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관심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해도 기독교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지적 욕구를 본성적으로 가진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다.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과학자가 되라고 생물, 화학, 수학이나 물리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세상의 현상들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지성을 갖추도록 하기 위하여 교육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소속하고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도 기독교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구상에 가장 크게 분포한 네 가지 종교들(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중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 친구가 될 사람, 사업상 파트너가 될 사람, 또는 옆집 이웃이 될 사람이 기독교 신앙인일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이해하는 일은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이해한다’는 말은 두 가지 상황으로 사용된다. 하나는 심정적 이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어떤 현상에 대해 동정을 갖고 지지하거나 같은 편에 서는 것이다. 이는 오랜 동안 듣거나 경험하여 알기 때문에 따져보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하거나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너를 이해해’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는 객관적이거나 논리적 혹은 합리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이며 심정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경우다. 이는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된 느낌이나 기억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신앙에는 이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합리적 이해다. 어떤 현상이나 실체를 이해하는 데는 ‘사실 파악’의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근거가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이 것을 꼭 학문적인 방법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재판정에서도 검사와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의 진상을 이러한 절차를 통해 소상하게 이해시켜야 한다. 그리고 배심원들은 상식에 따라 판단한다. 우리가 말하는 ‘상식’은 모두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합리적 설명과 이해를 뜻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신앙 내용을 이해할 때 합리적인 이성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처지를 알아듣는 것이고, 그 알아들음은 합리적으로 설명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기 혼자 믿는다면야 주관적인 자기 느낌만 있어도 되겠지만,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믿음의 내용을 공유하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신앙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이를 상호소통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믿음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성서를 읽고 기독교 사상과 교회 전통들을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조건 믿으면 된다’느니 혹은 ‘믿기만 하면 되지 알 필요가 있나? 골치 아프게…’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글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겠다. 그러나 어떤 사실과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사실을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지성적인 사람은 이 글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상식적이라는 방법으로 신앙을 이해한다 하여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때 초월적이거나 주관적이나 감성적인 인식의 영역을 외면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이해와 설명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이해하기 위해 인식의 공통점으로서 합리적이며 논리적이고 상식적이다는 말을 쓰는 것이다. 누구나 이성적으로 알아듣게 설명하자는 뜻이다.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노력은 결국 두 가지 관심사로 모아진다. 하나는 사람이다. 이는 생각하고 이해하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의 관심사에서 출발한다.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 참이고 올바른지에 대한 인식적인 판단이며, 도덕과 윤리적 책임이 따르는 사람의 생각과 행위에 대한 성찰이 수반된다.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믿음의 형식인 종교적 행위를 하는 사람의 자기 성찰 과정이 포함한다. 하나님의 주체할 수 없는 이끄심을 따라 불가항력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고백하는 그 고백 자체도 그 사람의 인식 능력과 자신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다. 고백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자신의 믿음과 확신 그리고 결단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할 때 사람의 상황, 현상, 실존을 이성적으로 살피며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신학적 관심사로서 신앙의 대상과 내용에 대한 관심이다. 성서와 교회전통, 신학적 사상들은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가 믿음의 사람들에게 전해준 유산이다. 이 유산을 통해 하나님과 그분의 일과 현상 등을 파악하여 기독교 신앙을 이해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을 이해는 결국 사람과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잘 이해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신앙의 대상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종합하고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2013년 5월 25일
내일아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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