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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2부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을 가르치다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을 가르치다

   

복음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첫 사역을 소개하며 예수께서 친히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증언한다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God/NIV,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God/KJV). 그리고 예수님의 첫 설교에서 복음을 믿어라하고 말씀하셨다는 사실도 증언한다 (1:14-15). 이런 사실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선포하신 그 복음을 믿도록 요구하셨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복음은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치심이며, 우리가 배우고 믿어야 할 내용이 된다. 이를 다시 해석하여 이해하면 기독교인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그 가르침을 배워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복음을 이해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이다. 신앙이 복음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합당한가 혹은 아닌가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그 정보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through Jesus Christ). 그래서 우리의 신앙을 기독교, 즉 그리스도교,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복음을 이해하는 우리의 노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복음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전해질 때 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우고 믿으면 얻게 되는 복은 우리에게 선하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가르치신 복에 대한 개념을 우리가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각기 자기가 원하는 바를 복으로 이해하여 기독교가 아니라 자기 신앙이나 미신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복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할 경우 복음에 대한 이해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잘못 알면 잘못 생각하고 잘못 행동하게 된다. 그러면 신앙은 본래의 목적에 어긋날 뿐 아니라 복이 아니라 화가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한 그 복을 알아야 한다. 복을 받기 원한다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복음의 복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듣는 복()된 소식이라 이해한다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복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복음 자체라 하여 그 가르침 자체가 우리에게 복이 되어 나타난다는 말이 아니다. 그 가르침을 배워 알게 되고, 그 말씀을 행하게 되면 복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우고 행하면 얻게 되는 복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하고, 그 복의 조건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복을 주려는 분의 의도, 즉 조건과 주시려는 복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바라는 복은 미신이 될 위험이 많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복을 말하려면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전체를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 전체가 사람의 복에 관한 것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에 대해서 집중하여 가르치신 부분이 성경에 있다. 이 부분을 연구하면 예수께서 말하는 복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복음서 중에 복음서라고 불리는 산상설교에서 첫 가르침의 주제가 에 관한 것이다. 마태복음 5:3-11은 복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여덟 가지 가르침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를 팔복(八福)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여덟 가지 복이란 하늘나라’ ‘위로’ ‘’ ‘배부름’ ‘자비’ ‘하나님을 만남’ ‘하나님의 자녀 됨등이다. 물론 이러한 주제들을 우리 식대로 해석해서는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복을 주시는 당사자가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받는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문법에 따라 그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복에 관한 이 여덟 가지 주제가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복의 기본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기본에 충실할 때 복음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을 얻는다는 사실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먼저 말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조건은 결과에 앞서는 법이다. 그러니 역시 조건적이며 조건이 충족될 때 주어지는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은 이처럼 조건적이며 제한적이다.

   

어떤 계약서든, 자동차를 살 때나 집을 살 때도 계약서의 조건을 잘 살펴야 한다. 계약의 조건을 잘못 이해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때문에 복잡하고 중요한 계약을 할 때는 변호사와 같은 전문가를 통해 한다. 잘못 알거나 중요한 조건을 놓치면 낭패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계약의 신앙이라고 부른다. 특히 구약성서를 읽으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이라는 말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계약이라는 말이다. 본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만남, 애초 아브라함과의 만남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셨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조건에 합당하면 복을 주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조건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이 출발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먼저 계약의 조건을 제시하신다. 사람이 계약의 조건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복도 계약이다. 무조건이 아니라 조건적이다. 우리 모두는 이 조건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이 달아날 수도 있다. 교회는 이 복과 복의 조건을 잘 가르치고 지켜가는 공동체다. 왜냐하면 복의 조건을 제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 8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