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육의 핵심 주제 하늘나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나라를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께로부터 배운 하늘나라를 가르치고 전하도록 명령하였다; “길 잃은 양 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거라. 그, ‘이스라엘 집의 길 잃은 양 떼에게로'다니면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마 10:6-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인격적 몸이며,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어가는 교회가 예수께로부터 배운 ‘하늘나라’를 가르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교회는 하늘나라의 문을 열고 닫는 책임과 권위가 주어졌다. 마 16:19에서 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해 주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해주지 않으셨다” (마 13:11). 이는 교회의 권위를 나타내 주기도 하지만, 하늘나라를 가르치는 교회가 지닌 그 책임의 막중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교회가 하늘나라의 문을 열 것인가, 아니면 닫을 것인 가, 그 것은 교회 하기 나름이다.
하늘나라에 대한 가르침은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분명하고 확고하게 세워준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과 들어갈 수 없는 조건들은 내세의 하늘나라만을 뜻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만들어주는 틀이 된다. 그러기에 교회는 하늘나라의 가치를 가르치고 실현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는 하늘나라에 가까이에 있다.
하늘나라의 이중적 이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늘나라를 이해할 때 다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오는 나라와 가는 나라 – 예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 속으로 뚫고 들어오며, 개입하여 직접 통치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였다. 이는 ‘가는 나라’에 관심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화들짝 놀랄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는 나라’가 강조되었다 하여 ‘가는 나라’가 무시된 것은 결코 아니다. 마가복음 10:23-25을 보자: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 제자들은 그의 말씀에 놀랐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예수께서는 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 이는 조건적이다.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지를 가르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의 태도를 요구하신 것이다. 이런 말씀도 하셨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막 10:15). 들어오는 사람을 막겠다는 뜻은 조건에 맞도록 준비하라는 뜻으로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이들을 향한 가르침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의 ‘오는 나라와 가는 나라’의 특성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오는 나라’의 의미인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를 따라 인간 세계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사람은 수동적으로 그 주권과 통치권에 순종하고 받아들이면 하늘나라를 얻게 된다. 다른 하나는 ‘가는 나라’의 의미인 하늘나라에 합당한 조건을 준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능동적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들을 이행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의 나라와 미래의 나라 -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부각시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미래적 시간 개념 안에서 이해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지금 여기 임박한 하늘나라의 도래를 말씀하셨다. 따라서 현재와 미래의 긴장 속에 있는 하늘나라를 이해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가르치시며 임박한 종말을 강조하고, 지금 당장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라고 촉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보자;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막 1:15).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 아주 다급하게 강조되고 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려서는 안될 급박한 요구다. 이는 심판과 관련이 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현재에도 심판 받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강조는 심판과 회개에 대한 강조로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현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있음을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12:28의 증언을 들어보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에게 왔다.” 현재의 하늘나라는 악한 영이 응징되고 쫓겨가는 것처럼 심판과 해방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적 사건이다.
현재적 하늘나라는 믿음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또는 '안에')에 있다.” 이는 믿는 사람들 가운데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생각 속에,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해 연합하고 헌신하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벌써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하늘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이루어가고, 자라가고, 성장해가는 미래의 하늘나라를 이해해야 한다. 예수께서 하늘나라를 비유로 가르치신 것 중에 씨뿌리는 비유와 가라지 비유가 장차 올 미래적 하늘나라를 잘 보여준다 (마13:1-30). 씨뿌리는 비유는 씨앗을 뿌리고 결실을 기다리는 미래의 상징이다. 장차 오게 될 미래의 희망으로 농부는 결실의 날을 기다린다. 가라지 비유는 악에 대한 현재적 심판을 보류하고 최종적 심판의 날까지 기다림을 뜻한다. 모두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다. 하늘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불완전하여 모순이 나타나지만 최후의 심판까지 기다리면 그 때 완성된다는 믿음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약속하고 있는데 이 역시 하늘나라와 연관이 있다;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마 25:31-33). 요한복음 14:18, 27, 28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들어보자;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너희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온다고 한 내 말을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을 믿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행 1:1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증언들은 장차 오게 될 하늘나라가 지닌 죄에 대한 엄격한 심판을 경고함과 동시에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구원의 때임을 강조하였다. 때문에 종말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뻐하며 평화를 누리는 나라로 인식된다. 하늘나라를 이해하려면 이 양면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교회는 현재적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며, 장차 오게 될 하나님의 나라 완성을 준비하는 신앙공동체다.
2013년 11월 4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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