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악마의 유혹을 받다 3.
Test 1. 배고픔과 빵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사막 가운데이기 때문에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먹을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성령께서 금식의 상태로 인도한 것이다. 즉 사람이 굶게 되었을 때 가장 약하게 될 수 있기에 이에 대한 시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금식은 먹는 것을 중단하는 것을 뜻하는데 사람이 곡기를 끊는 것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결단을 해야 할 중대한 위기 앞에서나, 아픔과 슬픔을 견딜 수 없을 만큼 겪을 때 오는 자연 현상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할 때 “아무리 힘들어도 먹어야 살지…” 라는 말을 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심각한 죄를 회개할 때나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자신을 스스로 낮추고 겸손해지는 형식으로 자발적인 금식을 한다. 금식이란 육체와 정신의 싸움이다. 금식은 육체의 욕망에 대한 정신적 통제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배고픔’이란 자신의 물질적 필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체적 신호의 정신적 반응이다.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육체적 욕구를 정신이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가 금식의 목적이다. 금식을 하나님께 시위하는 것처럼 이해하여 사생결단적 기도행위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렇지만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적절하지 않다. 금식은 육체적 욕구를 정신으로 통제하는 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즉 육체적 욕망을 극복하여 영적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금식의 목적이다. 금식 후 악마의 첫 유혹은 빵이었다. 구체적 유혹은 이렇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이 유혹에서 두 가지 조건이 나열되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조건이다. 또 하나는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물질 빵이라는 조건이다.
첫 째 조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앞서 세례 받을 때 성령이 강림하고 하늘의 음성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능력 안에 있는 존재라는 뜻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을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에 악마의 유혹이 파고든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가 배고픔 때문에 허덕인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가난하고 무능력하여 굶주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런 비참한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은 배고픔 이상의 정신적 고통을 수반한다. “하나님의 아들 맞아?” 하는 조롱도 섞여 있다. 가장 원초적인 고통인 배고픔을 방치하는 그 분이 사랑의 하나님이 맞아? 하고 비웃는 듯 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갈등에 처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식구들이 가장 원시적 필요인 먹는 문제로 고통을 받는다면 하나님을 원망해도 되지 않을까? 사랑의 하나님이 어찌 당신의 백성들에게 배고픔의 고통을 방치한단 말인가? 이런 말을 하면 믿음이 흔들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악마는 ‘당신이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라는 조건으로 유혹을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하나님의 능력을 지닌 그리스도에게 돌로 빵을 만들라는 악마의 유혹은 하나님의 능력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시험과 관련이 있다. 앞으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 할 지를 시험하는 것은 곧 사역을 시작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중요하다.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권능을 자신의 배고픔과 같은 육체적 욕망을 해결하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한다면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성령이 의도적으로 악마의 유혹으로 시험하는 것이다. 단순히 빵의 문제가 아니다. 영적 가치의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도덕적 시험이다. 교회도 이 시험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 진리, 능력, 영광 이 모든 은총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교회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시험(test)이다. 이러한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는 아주 간단하고 명쾌하게 해결한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4:4) 이는 신명기 8:3을 인용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사역을 실행하는 교회의 입장은 명백하다. 빵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가르치고 배우며 실천하는 것이다. 비록 배가 고플지라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함부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와 원칙이 있다. 이를 진리라고 부른다. 때로는 이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린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진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명한다. 교회는 빵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한다. 사람이 밥만 배불리 먹는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 확대 해석하면 물질적인 소유와 풍족함이 곧 사람의 행복을 보장하거나 완성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권능은 이러한 물질적 소유를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육체적 욕망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육체적, 본능적, 이기적 욕망과 물질적 소유의 유혹은 오늘 교회가 직면한 유혹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혹들을 이기지 못할 때 교회의 타락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중세의 교회 타락에도 이 물질적 소유의 욕망에 대한 유혹이 자리하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시대적인 유행과 자기애적 욕망이나 물질적 소유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요청하고 사용하려고 유혹 받고 있지 않은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답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부르고 행복해야 한다.
2013년 9월 4일
'내일 아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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