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교회, 복을 가르치다
복음
기독교신앙을 만날 때 ‘복음’이라는 말을 동시에 만나게 된다.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상관 없이 ‘복음’이라는 말은 기독교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만큼 복음이라는 말은 기독교의 핵심내용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여지고 있다. 그러므로 복음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는 일은 기독교 신앙과 교회를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기독교의 한 흐름을 말하면서 ‘복음주의’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럴 때 사용하는 ‘복음주의’는 영어 ‘Evangelism’을 번역한 것으로서 기독교신앙운동의 한 태도나 패턴을 의미한다. 이는 ‘복음’(Gospel)의 내용에 충실하다는 입장을 뜻하는 말이지 복음 그 자체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복음주의가 무엇인가를 알기 전에 ‘복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복음적이다’ 혹은 ‘복음적이지 않다’ 하는 말로 기독교신앙을 평가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복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신앙을 오해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르다면 판단도 달라지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단어를 사용하려고 할 때 먼저 단어의 개념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사용하는 단어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본질을 한참 빗나가 오해하거나 잘못 된 길로 가버릴 수 있기에 단어의 기본 개념 이해는 신앙에서도 참으로 중요하다.
단어적 의미
우리가 기독교의 복음을 이해하려 할 때 복음이라는 단어가 지닌 본래 의미와 그 단어를 사용하게 된 사용자의 동기와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복음서에서 사용된 단어 ‘복음’은 희랍어 '유앙겔리온'에서 비롯된다. 마가복음 1:1절을 보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여기서 사용된 ‘복음’ ‘유앙겔리온’은 ‘선한 것’에 주는 보상 또는 선하고 기쁜 일을 알리는 소식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를 의미적으로 해석하면 ‘들어서 알면 복이 되는 좋은 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한자어로 된 ‘복음’(福音), 즉 ‘복된 소식’이라고 읽는 것은 좋은 번역이다. 복음서를 기록할 때 기록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 내용을 나타내는 상징적 단어로 이해하고 있다.
이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였다면 성경의 기록자들이 이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사용하게 된 의도와 목적을 이해 할 필요가 되었다. ‘복음’이라는 말의 단어적 의미를 넘어 ‘복음’이라는 단어를 통해 초대교회가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을 알리고 강조하려 했는지 그 생생한 증언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 읽어보았던 마가복음 1장1절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 the gospel about Jesus Christ - 이라는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가복음은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정의한다. 이를 단어적 의미를 따라 해석하여 이해하면 복음이란 ‘우리에게 복이 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 네 책을 복음서라고 부른다. 그 책들을 듣고 읽으면 복이 된다는 약속이며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마가복음은 첫 장 첫 절에서 마가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이라고 정의 함으로써 복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확정하였다. 그러므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그의 사역,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신 내용을 뜻한다.
2013년 11월 7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