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도하라(2)-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되도록 간구한다: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이 구절은 ( a`giasqh,tw to. o;noma, sou\) 희랍어 원전을 따라 직역하면,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소서”가 된다. 여기서 ‘당신’ - sou - 이라는 말은 희랍어나 독일어에서 2인칭 극존칭어로 사용되어 하나님을 향한 호칭으로 사용된다. 한국어에서 ‘당신’이라는 말은 제 3자의 어른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2인칭에 사용하면 존칭어가 아니라 비하하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희랍어 단어를 우리 말로 ‘당신’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특히 기도하는 중에 호칭을 ‘당신께’ 라던가 ‘당신의 뜻’과 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께 일대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말로 높임 말로 ‘당신’이라고 상대를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말에서 ‘당신’은 제 3자를 두고 말하는 것이니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말이 된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는 식의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하는 것은 적절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기도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되는 것을 소망하게 된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 우리의 첫번째 기도가 될만큼 중요하다는 뜻이 된다. 동시에 이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살겠다는 고백이 된다. 그러므로 기도는 신앙의 고백이기도 하고 행함의 원칙이 되기도 한다.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는 신앙이 어떠하냐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고백과 같으며, 우리가 어떻게 살겠다 하는 약속이고 고백이 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높임을 받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첫 관심사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가장 우선하는 삶의 원칙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도록 하는 일이 교회의 중요한 사역이 된다.
사진/ Taos, New Mexico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
우리는 십계명을 잘 알고 있다. 그 열 계명 가운데 세 번 째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것이다. 출애굽기 20:7을 보자;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사실 제 1, 제 2계명 모두 우상숭배와 관련된 계명이니, 이 점에서 십계명의 첫 세 가지는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모독을 금지하도록 하는 뜻이라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제 삼 계명을 두 가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부른 적이 있는가? 감히 그럴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말해야 할 때면, 이름으로 말하지 않고 단어로 말한다. 예를 들면 ‘O 자, O 자, O 자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지킬 예절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도 역시 그 이름에 대한 존경심과 하나님의 거룩한 인격 때문에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없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발음할 수 없는 문자로만 우리에게 전해진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싶어했을 때 하나님은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있는 자다’ 하시며 그에게 이름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모세가 여전히 불안해 하니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표식인 4개의 히브리 문자를 주셨다. 그것이 ‘신성(神聖) 4문자(文字)’ 라고 말하는 모음 없는 자음이다(hwhy). 하나님의 이름을 구성하는 이 신성 4문자를 유대인들은 관습적으로 발음하지 않았다. 사본 필사자들이 신성 4문자를 기록할 때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었으며, 그 문자들을 기록하는데 사용한 붓을 부러뜨렸다고도 한다. 감히 입으로 말하기가 황송한 그 이름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구약 시대 이후(B.C. 3세기 경부터),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할 때, 또는 읽는 자들이 성경에서 그 이름을 볼 때마다 ‘주님’이라는 뜻의 명사 아도나이(yn"doa])로 발음했다.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혹은 함부로(문자적으로, 헛되이, 경솔히) 부르지 말라”는 계명에 따른 것이다.
‘여호와’나 ‘야훼’라고 발음하여 부르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표식인 ‘신성4문자’를 편법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이라는 뜻의 히브리 단어 ‘아도나이’의 모음을 ‘신성4문자’에 붙여서 발음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도를 할 때 ‘여호와’라거나 혹은 ‘야훼’라고 부르는 것은 편법일 뿐 아니라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나기도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하늘의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쳤지 않은가?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실제 이름이라 할지라도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의에 한참이나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니 오랜 교회의 전통에 따라 ‘주님’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가톨릭은 2008년 6월 교황청 이름으로 세계 각국 주교회에 하나님의 이름인 ‘신성4문자’를 ‘야훼’로 발음하지 말고 ‘주님’으로 통일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때늦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남용이나 무례함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교회의 결의를 공표한 점은 매우 잘한 일이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무분별 혹은 무례함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현실을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도 환영할 일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두 번 째 이유는 이름이 인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고 하여, 예의를 갖추어 부르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이 된다. 우리는 명예를 더럽혔다는 뜻으로 이름을 더럽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름이 곧 자신의 인격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한다는 뜻은 이름만이 아니라 말로나 행위로 하나님의 인격을 훼손할 수 있는 무례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기도할 때마다 이를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언행이 없었는지 돌아보고 회개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지켜가는 것은 무엇보다 인격적으로 예의를 잘 지키는 일이다. 예의를 지키려면 우선 호칭부터 잘 사용해야 한다. 예수께서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시작하도록 가르치신다. 이는 주님이 우리의 아버지처럼 되기를 원하신다는 가르침이 함축되어 있다. 또한 우리가 그 분의 자녀로 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신 것이다. 이 관계성에서 우리의 믿음이 시작된다.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기도하는 일은 자녀 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태도다.
2013년 12월 31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