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을 꿈꾸는가?
왕국 열망
한국에서‘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가 관객 천만을 넘어서는 인기를 얻었던 적이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통해 진짜 왕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통쾌하게 쳐부수고 이상적인 왕의 모습을 연기한 한 광대에서 자신들의 열망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은 왕에 관심이 많다.
한국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사극’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국가에 대한 전권을 갖고 있고, 왕이 마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투사하고 있다. 그래서 왕이 현실의 부조리와 고통스러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메시아적 기대와 반대로 제어받지 않는 폭군이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둘의 긴장을 즐기는 것 같다.
구약 성경에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지도자였는데, 제도적인 왕정은 없었고, 영적인 지도자이면서 시시비를 가리는 족장 같은 위치였다. 그래서 성경은 ‘판관’ 혹은 ‘사사’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변의 왕정국가를 보며 자신들도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살고싶었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요구 때문에 무척 속상해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를 위로하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마다 그렇게 하여,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더니, 너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니 너는 이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어라” (삼상 8:7-9). 하나님을 왕이라 여기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공동체보다 자신들 중에 왕을 뽑아 그 왕을 따라 살고 싶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속을 훤히 꿰뚫어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싶은 것이고, 하나님 없이 세속적 나라에 살고 싶은 것이다.
사무엘은 사람들이 세운 왕국이 가져올 나쁜 일을 세세하게 설명해준다: “당신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은 이러합니다. 그는 당신들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하고,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당신들이 둔 곡식과 포도에서도 열에 하나를 거두어 왕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남종들과 여종들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입니다. 그는 또 당신들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당신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 (삼상 8:11-17). 사무엘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들이 선택은 그래도 그들은 그들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살고 싶다고 합창을 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면서도 하나님 없이 살고 싶은 열망이다.
I-20 in Seetwater, Texas
그 이후 이스라엘의 왕국은 결코 평탄하지 못하였다. 예수님도 세상의 왕국이 갖는 부정적인 얼굴을 보여주었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 22:25-27). 당신의 나라에서는 결코 세상의 왕국이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며 제자들에게 분명히 일러주신 말씀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왕국을 원한다. 기꺼이 지배받고자 하는 이들도 무수히 많다. 배부르고 안전한 곳에서 살 수만 있다면 노예같은 삶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가치보다는 세상의 가치를 따라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을 계산한다. 이 것이 세속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의 일반이다.
예수님은 다른 왕국을 가져오셨다.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왕국/The Kingdom of God)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모두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강조하셨던 것처럼 왕이 백성을 섬기는 나라, 지도자들이 종이 되어 사람을 섬기는 나라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나라다. 인간 내면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며, 한 사람도 사람 위에 있을 수 없는, 어느 누구도 사람을 이용하여 자기 욕심을 채울 수 없는 나라다. 세상의 왕국처럼 백성을 지배하는 나라는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 그런 나라를 세우기가 십자가 죽음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예수님은 그런 나라를 받으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 분의 뜻을 믿고 따른다. 이를 그리스도인, 크리스챤, 또는 기독교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교회는 그 나라를 실현하고 그 나라를 이루어가는 운동 거점이다. 기독교인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먼 훗날 죽은 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와 가치를 따라 이 땅에서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교회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고 실현해가는 사역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살아있는 인격체로서 교회라면 지금 무엇을 할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사역을 하지 않겠는가!
오늘날 교회가 또 하나의 세속 왕국이 될 위험에 처해있다. 왕이 되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기꺼이 왕의 종이 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이름만 사용하고, 자기들끼리 왕을 뽑고 세상의 다른 왕국보다 더 힘이 쎈 세속왕국이 되어 떵떵거리며 위세를 떨치고 세도를 부려보고 싶은 것이다. 이스라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다. 사람들의 본성이다. 목사도 장로도 왕이 되고 싶다.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왕이 되고 싶다. 세속 왕국처럼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는 왕이 되고 싶다. 세상의 유행을 다 따라가고 싶다. 세상 속에 남부럽지 않은 나라의 백성이 되고 싶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욕망을 이루는데 거추장스럽고 방해가 되며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하나님 없이 사람의 왕국을 만들고 싶다. 이런 생각이 과하다 생각되면 기꺼이 하나님을 세속적 왕국을 만들어주는 초월자로 믿으려 할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던 자신들의 왕국을 만들고 싶어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왕국’(The Kingdom of God)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나라를 받으라고 우리를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누가 이 나라에서 왕이 되려 하는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속왕국을 꿈꾸는 자들 누구인가?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막 1:15).
2015년 2월 13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