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오솔길
오솔길을 걸어보았는가?
농촌 시골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한번 쯤 오솔길을 걸어본 경험이 있으리라. 오솔길을 주로 동네를 벗어나 뒷산이나 논밭을 지나 산 넘어 동네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길이다. 이 길은 둘 이상 나란히 걷기가 어려운 좁은 길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좌우로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나뭇가지들이 하늘을 가리기도 하며, 다듬어지지 않은 길바닥에 돌부리도 만나고 길 옆 넝쿨이나 다양한 식물과 들꽃도 만난다. 더러 산딸기라도 만나면 작은 손바닥 가득 따서 입에 집어넣고 시큼달콤한 맛에 취해 콧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오솔길은 혼자 걷는 길이다. 참 조용한 길이다. 오솔길은 자기와 자기가 이야기 하며 걷는 길이다. 그러면서 들풀과 들꽃들, 나무와 새들과 푸른 하늘과 구름, 목덜미 스쳐가는 바람결과 만나 이야기하는 길이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오롯이 나혼자만의 세상 속으로 걷는 길이 오솔길이다. 이 오솔길을 걸으며 콧속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바람과 귀에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눈으로 들어오는 둘풀과 들꽃들의 몸짓이 마음의 먼지도 털고, 얼룩도 지우며, 침침하던 눈을 밝히고 소음 속에 찌든 귀청을 말갛게 씻어준다. 오솔길을 천천히 걸오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여정에 자신만의 오솔길이 있어야 한다. 많은 친구들과 걸어가도 이 오솔길이 있어야 한다. 결혼을 하고 부부가 함께 걸어가는 길에도 나만의 오솔길은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키우며 가족이 함께 오손도손 사는 기쁨이 커도 이 오솔길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혼자이기 때문이다. 혼자이기 때문에 자기만의 오솔길을 걷는 것이다. 자기만의 오솔길이란 수십 억의 사람들 중에 오직 자기에게만 주어진 은총인 것이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어떤 면에서나 단 하나의 사람이다. 똑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이 점은 하나님 창조의 신비다. 그러기에 둘이 함께 있어도 한 사람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을 외쳐도 이는 우리 모두가 똑같지 않은 개별적인 나 하나임을 외치는 것이다.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세계다. 그래서 그 하나 하나는 존중되고 존엄하게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의 길이 그 만의 오솔길이다. 그 오솔길에서 삶의 행복을 발견한다.
신앙은 이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고 주님을 혼자 만나는 것이다. 19세기 덴마크 출신 철학자이며 신학자였던 키에르케가르트(Kierkegaart)가 신앙을 “절대자 앞에 선 단독자”라는 말로 정의하기도 했는데 기독교 신앙이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한 사람임을 그는 강조했다. 신앙은 집단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개인 하나님 앞에 섬으로써 구원이 시작됨을 뜻한다. 한 사람이 한 분이신 절대자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다. 나 한 사람이 주님을 만난다면 나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인 나를 알아야 한다. 나만의 오솔길에서 그 한 나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셨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리하면 숨어서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 6:6). 키에르케가르트의 정의처럼 기도를 절대자 앞에 단독자로서 나아가는 것임을 예수님은 가르치신 것이다. 아무도 끼어들 수 없는, 아무도 듣거나 보거나 하지 않는, 아무도 없는 비밀스러운 자기 방에서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이다. 하나님도 아무도 엿듣는 사람이 없는 오직 한 사람만을 만나 들으시겠다는 뜻이다. 골방을 만들어라, 영적인 오솔길을 찾아라 하는 뜻이다. 그 오솔길로 주님은 오직 하나인 나를 만나러 오신다는 약속이다. 주님은 그 오솔길에서 만나자 하신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은 이 오솔길을 걸을 줄 모른다. 아니 찾지도 않는다. 10차선 대로를 뜨거운 열기를 담고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틀고 안락한 의자에 앚아 흭흭 다른 차들을 지나치거나 시멘트 빌딩을 지나칠 뿐이다. 소음 가득한 아스팔트 거리를 뛰다시피 달릴 뿐이다. 오직 빨리 빨리 스피드 경쟁을 하며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할 뿐이다. 걸으며 앉으며 스마트폰을 두둘기며 흭흭 수 많은 가십들을 지나치며 수 많은 사람들을 피상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스피드와 소음에 익숙하여 느리면 답답하고 조용하면 불안해지는 사람들은 오솔길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교회는 세상 한 가운데서 세상을 떠난 조용한 공간이었다. 세상의 소음을 떠나고 세상의 분주함을 떠나며, 아귀다툼 같은 세상의 경쟁과 싸움판을 떠나 한적한 오솔길을 찾아가는 곳이었다. 조용하고 아주 조용하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로 가는 곳이었다. 깊고 깊은 심연 속에 자신을 만나러 가는 곳이었다. 요란한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고요한 침묵 속에서는 보이는 자신의 죄와 허물 아픔과 눈물을 만나러 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점점 교회가 더 요란해진다. 10차선도 모자라 16차선으로 넓혀 더 많은 자동차가 더 많은 개스를 내뿜고 소음을 내어야 안심하는 교회가 되어간다. 교회가 더 이상 한적한 오솔길이 되지 못하고 소란스런 세상의 길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교회당에 세상의 온갖 소음으로 채워진다. 교회의 세속적 욕심도 커져만 간다. 사람들도 오솔길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오늘도 주님은 꽃바람 향긋한 오솔길을 따라, 파란 하늘 흰구름 아래 구불구불 오르락 내리락 오솔길을 따라, 형형색색 들꽃 물결 흐르는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사람을 기다리신다. 아무 찾는 이 없어서 외로와도 그 오솔길을 찾아나서는 당신의 사람을 기다리시고 계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마7:13-14).
2013년 8월 18일
'내일 아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