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바울을 위한 변명 - 그리스도인의 새 삶

내일아침 2014. 8. 22. 06:39

바울을 위한 변명; 그리스도인의 새 삶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 12:1).

 

   바울의 관심은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에 있다. 교리적 주장은 이 새로운 삶의 원리를 설명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바울이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이 이해하는 구원의 핵심은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 사는 것이고, 바울이 생각하는 신앙은 새 사람으로 사는 헌신적 애씀이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설명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고후 5:17). 구원은 이전과 다른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새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고후 5:18). 요한도 바울처럼 증언했다;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 1:12). 그러므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 거듭나 전혀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고, 예수께서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니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는 것인 셈이다. 

 

   바울의 신앙이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몸으로 하는 짓을 뜻한다. 바울의 말을 들어보자;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12:1). 몸으로 하는 짓이 하나님께 드릴 예배가 되도록 하라는 뜻인데, 마음과 생각과 영혼으로 몸을 움직여 사는 짓이 거룩한 예배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삶의 원리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니 바울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하신 하나님 사랑 원리와 딱 들어맞는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 22:37). 이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예배고 그리스도 안에 거듭난 사람의 새 삶이다.

 

 

El Paso Sunset/ Franklin Mountain

 

   물론 바울은 하나님을 향한 몸의 사랑만 말한게 아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하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향한 몸의 사랑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십시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마십시오” (12:10, 15-16). 몸으로 실행하여 사랑하는 일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고 거듭난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교리논쟁이나 하는 것은 바울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몸으로 드러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예배가 되게하는 사람의 변화와 세상의 변화에 바울의 전심이 있다.

 

   새 삶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바울은 이렇게 권한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12:2). 시대의 유행을 경계하는 태도가 기본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유행과 하나님의 뜻이 서로 다를 때는 세상의 유행을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아는 일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에 가장 우선 힘써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각과 가르침 속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깨달아 받아들여 내 마음과 생각 속에 채워져야 한다. 그래야 분별도 할 수 있고 세상의 유혹을 물리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찌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하지 않고 새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새 삶이란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는 것이다. 홀로 노력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 살아갈 수도 있겠으나,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가 될 때 더 크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쓰는 편지는 공동체 생활을 기본으로 한다. 바울은 그 교회 공동체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1:2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고전 6:15). 바울은 고리도전서에서 집중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에 대하여 설명한다. 로마서에서도 지체로서의 삶을 강조한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12:4-5).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 새 삶을 시작하는 사람은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교회를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이다. 바울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바울은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이해하고 깨달으며 받아들여 새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과 생각과 영혼을 다하는 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예배하는 사람이다.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지체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 2:20). 이 것이 바울이 말하는 구원받아 새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다. 교리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이해하고 깨달아 온 몸으로 행하여 사는 삶이 기독교 믿음이다.       

 

2014년 8월 21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