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탄이다!"
"너는 사탄이다!"
(막 8:27-38)
병을 고치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과는 다른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궁금했지만, 예수님 자신도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도 궁금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서로 좋은 관계를 위해 서로를 잘 알 필요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알 필요가 있다. 오해는 큰 문제를 불러온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물음에 대답한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막 8:29) 마태는 이보다 더 세밀한 증언을 하고 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마 16:16)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고백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칭찬하신다. 그리고 감격하셔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마 16:17) 그리고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고, 그 이름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셨다(마 16:18). 이처럼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의 큰 기쁨이었고 감격이었으며, 희망이었다.
그러나 곧 이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사탄이다”이라고 호통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막 8:33, 마 16:23) 베드로에게 그렇게 기뻐하셨던 분, 베드로의 고백을 만족해 하시고 장치 당신이 세우실 교회의 밑돌로 사용하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그 예수님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베드로가 잘못했기로서니 어찌 당신이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탄이라니….
그만큼 예수님의 분노가 컸다고 볼 수도 있고, 그 정도의 분노를 통해 주시고자 했던 교육적 의미가 크고 중요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장차 교회의 밑돌이 될 베드로이기에, 앞으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을 때 닥치게 될 위험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기 위하여 사탄이라고 베드로를 닦아세웠을 것이라고 짐작할 만 하다. 또한 사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베드로라는 한 사람의 언행을 통해 강렬하게 전하시려 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모든 가능성의 공통점은 교회가 사탄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는 교육적인 의미다.
베드로가 순식간에 사탄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사실상 그 나름대로 생각에서 나온 언행 때문이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셨다. 동시에 예수님 당신의 고난과 죽음을 예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 베드로가 반발하였다. 마가는 이렇게 증언한다;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막 8:32) 마태복음의 증언도 이와 비슷하다;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다.” 베드로가 반발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는 어렵다. 자신의 스승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제자로서의 지극히 당연한 인간적 도리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렇게 크게 분노하셨을까?
Korean UMC in El Paso, Texas
앞에서 말했듯이 이는 장차 세워질 교회를 염려하고, 교회가 대비하도록 하기 위하여, 교회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한 교육적 행위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교회가 처하게 될 치명적 위험이란 베드로가 보여준 바처럼, 충성이라는 결단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반역하는 행위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앞에서는 아름다운 신앙을 고백하고, 돌아서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 인간의 이중적 태도를 가질 때 사람은 사탄이 되고 만다는 원리를 명쾌하게 보여주셨다.
“너는 사탄이다”라는 말씀이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루어 갈 예수 그리스도의 몸 교회들에게 쩌렁 쩌렁, 산천 울리도록 들려져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사람의 일을 우선하는 교회풍토가 이미 뿌리 내린지 너무나 오래 되지 않았는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따라가기 보다는, 세상의 유행과 사람들의 욕망을 우선하여 따라간다면, ‘너는 사탄이다’하는 예수님의 호령을 비켜갈 수 없을 것이다.
“너는 사탄이다”는 오늘 교회를 호령하는 말씀이다. 베드로라는 이름을 생각할 때 교회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 격한 목소리를 들을 때 동시에 들려오는 음성을 못들은 채 할 수 없다. 공관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21:12-13, 막 11:17, 눅 19:46) 성전을 향하여 ‘강도의 소굴’이라고 호통치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너는 사탄이다”하는 말씀과 함께 들려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너는 사탄이다” 하는 호통이나,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는 진노의 음성은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면서, 사람의 뜻을 따라가는 이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늘나라의 주권자인 것인양 하는 위선을 발가벗겨내려는 교육적 회초리다. 오늘 세속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교회는 이 회초리 앞에 자발적으로 종아리를 걷어 올려야 한다.
2017년 3월 19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