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악마의 유혹을 받다(4)
Test 2. 기적을 바라는 유혹
악마의 두 번 째 유혹은 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으로서 시 91:11, 12을 인용하여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발 하나 다치지 않게 하실 거라며 뛰어내려 보라는 유혹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이 것을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있나?’ 하는 유혹이 깔려있다. 악마는 무엇을 노린 것일까? 그 노림수를 추측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때나 오늘이나 사람의 심리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높은 데서 떨어져 다쳤다면 하나님 계신 거 맞아?’ ‘높은 데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면 내가 하나님을 믿지…’ 하는 태도는 그 때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단순히 기적이라는 사건을 통해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욕구를 통해 악마가 유혹을 하는 것이다. 또한 기적을 신앙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의 경향을 이용하여 시험하는 유혹이다.
기적을 경험하면 믿음이 생길까? 사람들은 믿음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마태복음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답변을 들어보자. “그 때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기적을 많이 행한 마을들이 회개하지 않으므로, 꾸짖기 시작하셨다. ‘고라신아, 너에게 화가 있다. 벳새다야, 너에게 화가 있다. 너희 마을들에서 행한 기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쓰고서, 회개하였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화가 있다.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소돔에서 행했더라면, 그는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마 11:21).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믿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탄식이다. 기적이 믿음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극단적인 기적 속에서 느껴보려는 경향은 믿음과 거리가 많이 멀다. 극적인 위험과 어려움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옳다. 그러나 그 기적 속에서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찾으려 한다면 너무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체험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음과 눈과 귀를 맑고 깨끗하게 하여 지극히 상식적이고 평범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보호하심을 경험하는 영적 민감성이 먼저다. 교회가 기적의 전시장으로서 사람의 시선을 끌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초자연적 기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사람들이 깜짝 놀랄 기적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적이 있어야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탄의 유혹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을 들어보자;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 신명기 6:16을 인용해 하신 말씀이다. 기적으로 하나님께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사랑으로 존재하신다. 교회는 기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시험하려는 세속적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2013년 9월 5일
'내일 아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