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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신앙과 고생(苦生)

신앙과 고생(苦生)

 

           

모든 이들의 공통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어려운 일 없이 편안히 잘 사는 것이 우선 순위에 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은 역설적이게도 모든 이들이 그렇게 간절하게 소망한다는 평안이 사람들에게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기독교 신앙은 놀랍게도 고난의 신앙이다.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죽음의 고통을 상징한다. 놀랍지 않은가? 종교라면 오히려 고난과 고통을 피하자고 해야 할 텐데 기독교 신앙은 고난을 높이 들고 따르라고 한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어째 긴장이 감돌지 않는가? 성경을 읽어보면 온통 고난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아마 편안한 인생을 바라고 성경을 읽는다면 많이 실망할 것이다. 성경은 구약이나 신약에서나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편안한 자리가 없다. 긴장의 연속이다. 구약의 창세기는 천지창조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인간의 죄와 벌이 기다리고 있다. 신약성경을 봐도 아기 예수탄생 소식과 함께 두살 아래 모든 아이를 죽이라는 무시무시한 공안탄압(?) 이야기로 시작한다. 심지어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10:34) 라는 말씀도 하셨다. 어째 성경이 이토록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공갈 협박처럼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단말인가? 이 쯤되면 실망하고 예수님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가 참으로 많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많이 오해하며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예수 믿으면 잘 먹고 편안히 잘 살고 반드시 그렇게 잘 산다’ 하는 신념을 믿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개인이 그렇게 믿겠다는 데는 말릴 길이 없지만, 이러한 믿음이 기독교 신앙을 크게 오해하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크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산다는 소망은 가치적 판단의 기준이 없이 말할 수 없다. 돈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될 때 돈이 많으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보는 것일텐데, 과연 그럴까? 돈이 필요하긴 해도 돈이 행복과 건강을 다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꼭 건강을 위해 힘든 걸 참고 하는 것은 아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힘들게 운동을 마치고 난 기쁨과 행복은 운동을 계속하게 하는 가치다. 그래서 시간과 돈을 들여 힘들게 운동을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어떤 가치로 사는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님보다는 돈이 인생에서 더 중요한게 될 것이다. 그리 믿는다면 명목상으로는 예수님을 따른다 하지만, 실제의 삶은 돈을 따르게 될 것이다.

 

 

      사진/ Painted Dunes, El Paso, Texas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 14:27). 가치의 차이를 말씀하신 것이다. 평화에 대한 가치 기준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주님의 것이 다르다는 말씀은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심각하게 들어야 한다. 예수 믿으면서 왜 힘들게 사나? 하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운동을 하지 않으며 왜 힘 든 운동을 돈 들여 하나? 하고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치를 알지 못하면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땀을 흘리고 숨이 차도록 헉헉거리며 고통스러운 몸짓을 하는 스포츠의 매력을 알 수 있다면, 기독교인의 삶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믿음 생활을 하며, 교회생활을 하며 힘들고 어려움을 동시에 겪으면서도 참 평화, 거룩한 기쁨의 희열,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신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고난을 피하는 신앙이 아니라 고난을 짊어지라고 가르치는 신앙이다. 예수님은 그 짐을 질 수 있는 멍에를 주시겠다고 부르신다 ( 11:28). 짐을 없애준다는 약속이 없어 혹시 섭섭하신가? 바울은 신앙생활을 경기장에서 달리기 상을 받기 위해 달리는 것과 비유를 했다. 스포츠와 같다는 말이다. 사력을 다해 달려야 한다니 실망인가? 아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고 우리 신앙도 그렇다. 왜냐고 묻지 말라. 어려움을 이기고 나면 무척 행복해진다. 어려운 문제 풀고 나면 희열에 넘친다. 수많은 장벽을 뚫고 목표 지점에 도달하면 성취감에 환호를 한다. 그렇게 사는 거다.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밋밋하게 살면 따분하고 재미 없다고 불평한다 

 

성경 이야기 전체는 고난의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고난을 극적으로 극복하는 드라마틱하고 스릴이 넘치는 스포츠 이야기 이상의 감격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독교 신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하늘에 오르는 신비가 아니라,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고생을 짊어지고, 뚜벅 뚜벅 좌로나 우로나 흔들림 없이 걸어,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길을 따라 영원한 세계를 사는 진리의 길이다 

 

2013년 11월 11일

'내일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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