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계명
(막 2:23-3:6)
"안식일은 노동을 멈추고 육체의 쉼을 갖도록 하는 근대 노동법의 의미를 훨씬 넘어선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처럼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일을 넘어 돈이 목적이 되어버린 풍조에
안식일은 일 속에 파묻혀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아 오는 날이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이 유대인들 특히 바래새파에 속한 율법학자들과 충돌하여 논쟁이 되었던 일이 종종 있었다. 안식일에 길을 가다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에 비비어 밀알을 발라 입에 넣는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예수님께 시비를 하였다(마 12:1-2, 막 2:23-24, 눅 6:1-2).
이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는 명분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예수께서 안식일에 무슨 일을 하는가를 주시한다(막 3:1, 눅 6:9, 14:1).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의도에 어떻게 대응하셨을까? 어느 안식일에 바리새파 지도자에 속한 한 사람 집에서 예수님께서는 작정하시고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이 잘못된 일인가 옳은 일인가를 율법교사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묻고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손 마른 수종병 환자를 고쳐주셨다(눅 14:1-6). 이는 의도적으로 안식일 논쟁을 촉발시키신 것이다. 작심하고 안식일에 대한 유대인들의 관습을 문제삼으신 것이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이 같은 행위가 유대인들의 격한 반발을 불러왔고 마침내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빌미가 되고 있음을 상세하게 전해준다(요 5:16, 18)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고 선전한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요 9:16) 요한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 했던 그들이 내세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안식일 준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음을 증언한다. 안식일이 그들에게 그만큼 중요했던가?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율법의 상징처럼 이해되었다. 창세기는 안식일의 기원이 하나님의 쉼에서 비롯된 것임을 전한다;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샛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창 2: 2-3)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사 출애굽 과정에서 모세가 하늘로부터 온 만나를 거둘 때 지켜야 할 수칙을 명령하는 가운데 안식일을 말한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일은 쉬는 날로서, 주님의 거룩한 안식일이니, 당신들이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으십시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당신들이 다음날 먹을 수 있도록 아침까지 간수하십시오.” 그리고 시내산(하나님의 산)에 이르러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온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이 안식일에 관한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출 20:8) 이렇게 안식일은 십계명 중 네 번 째 계명으로서 유대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으로 명문화(明文化)되었다.
구약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안식일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창조적 노동과 쉼이다. 둘 째는 출애굽 과정에서 노예로부터 해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신 하나님의 구원 사건과 관련이 있다. 신명기는 십계명을 설교하며 안식일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 (신 5:15) 또 다른 하나는 창세기나 출애굽기가 공히 증언하는 이 날을 ‘복된 날’ ‘거룩한 날’로 지키라는 것이다. 안식일은 그 모든 내용을 종합할 때 사람에게는 ‘복된 날’이며 하나님께는 ‘거룩한 날’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목숨처럼 지키려 했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에게 복된 날, 하나님께 거룩한 영광의 날이 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결코 사람을 통제하고 억압하며 정죄하기 위한 계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안식일은 사람에게 복되고 하나님께 거룩한 영광이 되는 순간이며 이 둘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해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이 점에서 실패했고 예수님은 이 점을 그들에게 가르치시고자 하셨다.
안식일은 노동을 멈추고 육체의 쉼을 갖도록 하는 근대 노동법의 의미를 훨씬 넘어선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처럼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일을 넘어 돈이 목적이 되어버린 풍조에 안식일은 일 속에 파묻혀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아 오는 날이다. 히브리 백성들이 노예로 쉼 없이 일하며 짐승처럼 살아갈 때 해방을 선포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따라, 안식일은 오늘도 물질의 만족을 추구하는 감각의 노예로가 되어,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법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로 복귀하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는 명령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사람들의 영광과 물질의 힘만이 숭상되는 암흑의 시대에 진리의 빛을 횃불처럼 높이 드는 날이 안식일의 의미다. 이 것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과 안식일 논쟁을 자청한 이유다.
안식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짐승 같은 삶, 억압받는 세상 풍조로부터 해방하고, 잃어버린 영성을 회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모든 사람의 영성을 파괴하는 죄와 악마성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계명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에서 ‘안식일’ 계명은 사람을 억압하고 통제하며 파괴하는 폭력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계명만 존재하고 계명을 주신 사람을 구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잊혀진 그들만의 율법이 되어버렸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마 5:17) 예수님은 이를 깨트리려 했다. 마치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내던졌던 것처럼(출 32:19).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눅 13: 15-16)
20015년 10월 25일
심용섭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