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 권력에 대하여
롬 13:1-7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롬 13:1-7).
로마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가 사람들에게 읽혀진 이래로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처럼 읽기에 불편하기도 하고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한 곳이 바로 13:1-7절이다. 국가권력과 교회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와 관련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국가의 세속적 권력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이 바울의 뜻인가? 하는 물음이 그 논쟁의 핵심이다.
세속적 권력 쪽에 선 입장들은 바울이 말했지 않느냐, 교회도 권력에 무조건 복종해라 하는 태도를 지켜왔고, 반대입장은 바울의 본 뜻은 무조건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권력에 선택적으로 복종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또한 ‘복종’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에게만 복종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세속 권력에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
바울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 바울이 쓴 내용을 보면 틀림없이 국가의 세속 권력에 복종하라는 명령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바울은 복종해야 할 권력을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 (God has established (Rom 13:1 NIV) 라고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봉사하는 세속 권력에게 복종하라는 뜻이라고 보는 것이다. 바울도 세속 권력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구체적 힘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이를 어찌해야 하나? 양쪽 입장이 서로 팽팽하니 말이다. 이럴때는 두 가지 사실을 검토해야만 한다. 하나는 예수님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바울은 전적으로 예수님께 복종한 사람이니 예수님의 뜻에 따를 것이니, 그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먼저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도록 해보자. 예수님은 국가권력에 두 가지 입장을 보여주셨다. 한번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술책으로 질문을 해왔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 달라.” 그러자 데나리온 한 닢을 예수께 가져다 드렸다. 그러자 이렇게 질문하신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그들이 대답하기를 “황제의 것입니다” 하자,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하셨다.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혜에 감복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마22:15-22). 예수님은 이 세상의 권력과 하나님의 능력을 분리하여 보았다. 세상의 권력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복종해야 할 권력은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해 두신 것이다. 바울의 입장보다는 훨씬 명료하다. 그래도 남는 문제는 세상의 권력이 하나님의 뜻과 달리 악할 때는 어찌할 것인가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부당한 권력에 저항했다. 종교권력인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과 맞서기도 했지만, 헤롯과도 맞서야 했고 로마총독과도 맞서야 했다. 그래서 로마 총독의 형집행으로 사형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복종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이 세상의 힘을 향해 죽음으로 맞서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 이런 말씀하신적이 있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마 20:25-26). 타락하고 남용되는 세속 권력을 부정한 것이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불렀던 찬양을 누가는 이렇게 소개한다.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눅1:15). 이런 점에서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은 이 세상의 권력과 긴장관계에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나라와 이 세상은 긴장관계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은 친하게 지낼 수 없다. 따라서 교회 역시 이 세상과 불화할 수 밖에 없다.
The church can only exist in a negative state of tension with this dark, disastrous and
demonic world of sin and death, which stands in opposition to God and is thus heading
for its end (Hans Küng, The Church, 612).
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다. 이 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명백한 입장이다. 기독교는 이 입장을 따른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예수를 따르며 성서를 따르기 때문이다.
사진: Korean UMC in El Paso, Texas
바울이 이러한 예수님의 입장을 몰랐을리 없다. 그러면 바울은 왜 오해의 여지를 남기는 말을 했을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국가제도는 하나님의 허락하신 제도이므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국가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신비주의나 열광주의 신앙을 경계한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이 큰 나머지 세속 사회를 무시하는 그런 신앙의 형태는 아직도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하나는 바울에게 세속 국가의 권력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글에서 드러나 있다 (롬13:6). 바울은 국가권력이 하나님의 뜻을 펼치거나, 의를 위해 세상의 악을 응징하는 도구로 이해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당연한 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국가권력이 타락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를 고려하지 않은 원칙적 입장만 말했을 뿐이다. 따라서 바울의 국가권력에 대한 입장을 교리처럼 이해할 것이 아니라, 세속 권력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지 또는 거스르는지를 판단하고 선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비록 오해의 여지는 있지만, 바울이 국가의 세속적 권력에 대해 무조건 복종하라고 하지 않았다는 점은 거의 분명하다. 바울의 말을 이용하여 국가권력에 무조건 복종하고 타락한 권력에도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울을 오해했거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보다 세속국가권력을 더 우선하는 세속적 태도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름받았고 세상 속에 보냄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세속권력의 타락과 남용을 용납할 수 없는 악으로 이해하고 저항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입장으로서 당연하다. 그럼에도 바울의 말을 교리적으로 생각하고 문자 그대로 믿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만에 하나 바울이 100% 그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교회는 바울이 아니라 예수님 입장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왜나하면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바울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바라보고 산 사람이다. 바울의 모든 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헌신할 뿐이다. 이 사실을 안다면 이 난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바울의 글을 자기 원하는대로 해석해 따르려 한다면 기독교가 아니라 세속 권력을 추구하는 ‘타락한 기독교’이거나 ‘바울교’가 되고 말 것이다.
2016년 12월 1일
'내일 아침' 심용섭 목사 쓰고 올림
P.S: 바울의 말을 문자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마도 자기 주장을 하고 싶어서일 것이고, 바울의 말을 입혀서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만들고 싶어서일 것이다. 전형적인 아전인수(我田引水) 이고 비기독교적이다. 타락한 목회자 거짓된 설교자들은 바울이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대상이다. 이들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는 신약성서 안에 가득하다.